구원 받았는지 아닌지?

목사님 말씀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 아는 방법

요한계시록 14:3, 땅에서 구원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 밖에는 아무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8, 그 수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 수는 육백육십육입니다

로마 지배에 순응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로마의 황제를 뜻하기도 하고,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꿈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수가 14만 4천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2라고 하는 숫자는 완전 숫자입니다. 3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숫자이고 4는 세상의 완전을 뜻하는 숫자예요.

둘을 더한 숫자 7은 럭키 세븐이죠. 둘을 곱한 숫자가 12에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7 혹은 12라는 수가 자주 등장합니다.

12 곱하기 12 곱하기 10의 3승을 곱한 합은 144,000. 10의 3승인 이유는 정입방형이에요. 가로 세로 높이 모두를 곱한 거에요.

그러니까 14만 4천이라는 것은 완전한 숫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날 구원의 완전성을 말하기 위한 것이지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제한하기 위한 숫자, 커트라인은 아니라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구원 받았는지 구원 받지 않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독교 이단종파는 구원 받았냐고 묻기도 합니다.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은 내가 왠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인 것 같고, 구원 받았나요 라고 물어볼 때 우리가 질문자에게 되돌려줘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구원이요? 이렇게 말해야 돼요

구원, 다양한 의미로 사용

어떤 사람이 병들었다가 치유를 받았을 때 그걸 구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내 마음이 산산조각나 가지고 분열되어 있었는데 내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녹아서 하나로 통전성을 회복한 것도 구원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이 더러움에 빠져 있다가 깨끗한 삶을 지향하게 되는 것도 구원이라고 합니다.

총체적인 구원은 결국은 하나님의 큰 생명 속에 내가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구원 받음이겠죠.

구원 받은 방법

18세기 독일의 작가이며 사상가였던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현자 나탄‘이라고 하는 희곡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반지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반지 하나를 손에 입수했습니다. 영롱하게 아름다운 반지였어요.

그 반지를 낀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와요. 그러니까 그 반지를 낀 사람이 그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 반지가 자식들에게 전해져 가는데 맏아들에게 주는 게 아니고 아들 가운데 가장 그 반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넘어가요.

어느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누구에게 반지를 줘야 될까 고민을 했어요. 세 아들이 다 훌륭해요,

그러니까 누구에게 줘야 될지 몰라서 아버지가 어느 날 세공사를 찾아가서 “이것과 똑 같은 반지를 2개 더 만들어주시오”

솜씨 좋은 세공사가 똑같은 반지를 만들어 왔어요. 보니까 구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각자 하나씩 반지를 줘요.

그 아들들의 생각은 ‘아버지가 내개 반지를 주셨어’ 다른 아들도 다 똑같은 생각을 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보니까 형제들이다 반지를 끼우고 있는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 동생이 혹은 형이 끼고 있는 저 반지가 가짜일 거야.

그래서 재판관에게까지 갑니다. 그런데 재판관도 방법이 없어요. 솔로몬 같은 지혜를 발휘하기도 매우 어려워요.

그때 재판관의 마음속에 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 반지를 소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반지의 진짜 주인인지는 이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진짜 반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반지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해봐라. 그러면 누가 진짜인지 알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레싱의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저희가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욕심 사납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도 배타적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나 그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일그러진 생명을 온전하게 하고, 깨졌던 마음들을 사랑으로 녹여서 하나 되게 하고, 더러웠던 삶을 사는 사람이 순수한 삶을 살게 되는 거라고 한다면

내 삶의 지향이 그렇게 바뀌었다면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구나 확신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확신이 없거든 그렇게 살면 돼요. 그것이 구원받은 삶이에요.

내가 삶을 통해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 구원받은 사람임을 입증해 보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 받았어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6:47,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한복음 3: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24,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옭겨갔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 속에서 작동한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난 구원받은 사람, 영원한 생명 속에 내가 들어간 거예요.

영생은 시간의 무한한 연장을 살아내는 게 영생이 아니고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과 접속을 이루며 사는 오늘의 삶이 영생의 시작이에요

그 삶이 감사 그 다음에 그 영생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또 다른 생의 특징은 경탄하고 감탄하는 겁니다.

감탄하는 능력을 빼앗아 가는 것은 사탄이 하는 짓이에요. 왜냐하면 우릴 끝없이 경쟁 속에 몰아넣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며 이것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어요.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건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만들고 그래서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고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내가 여전히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당신의 사랑을 철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이것이 감사하는 삶이고 내 속에서 그 감사와 경탄이 끊이지 않을 때 나는 이미 영생 속에 머물러 있다.


김기석 목사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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