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꼭 해야 하나요

목사님 말씀

십일조는 우리가 자기 소득이나 재산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알고 있죠. 소득의 10분의 1을 떼서 십일조 헌금을 합니다.

그런데 십일조, 구역성경이나 신약성경에 써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성경 속 십일조란

성경에는 십일조에 관한 얘기가 많지는 않습니다.가장 먼저 십일조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것은 창세기인데요.

…아브람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창세기 14:20

아브라함이 전투를 치르고 그후에 하나님을 섬기는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자신의 재산의 10분의 1을 드립니다.

또 야곱이 벧엘이라고 하는 곳에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약합니다.

…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창세기 28:22

이 장면에서, 십일조의 의미와 정신은 이런 것입니다. “나의 삶과 재산은 내 능력과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내 삶과 내 재산의 주인이시다”라는 고백으로 십일조를 일종의 증거로 드리는 것이 창세기에 나온 최초의 십일조의 모습입니다.

십일조 정신

지금 우리가 십일조를 누구에게 하고 또 누가 받고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사용의 정신이 무엇인가?

왜냐하면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죠. 하나님은 십일조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필요한 존재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십일조가 필요한 거죠. 저는 이 십일조의 정신을 구역성경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3가지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1. 헌신을 향한 십일조 혹은 헌신하는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

민수기 18장 21~29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회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민수기 때는 아직 성전이 있기 전이니까요.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 제물을 바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제물을 관리하고 그 제물을 통해서 제사장은 자기의 삶을 이어나갑니다.

하나님께 바칠 제물은 드리고, 그 제물의 나머지를 가지고 자기의 삶을 이어나가죠.

대신 제사장 그리고 제사장을 도와서 회막이나 성전에서 같이 일하는 레위 자손들은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땅이 자기의 생산 수단으로 주어지지 않아요. 오로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되는데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 제물의 일부가 사용되는 거죠.

레위 지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레위 자손에게는
이스라엘 안에서 바치는 열의 하나를
모두 그들이 받을 유산으로 준다.
이것은 그들이 회막 일을 걷는
거드는 것에 대한 보수이다

민수기 18:21

레위 지파 사람들도 특별한 직업이나 어떤 생산할 수 있는 땅을 받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헌신한 사람들 이거든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아름답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데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사용하라고 이렇게 민수기에 쓰여 있습니다.

주의할 점

첫째,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는 제사장이나 레위 지파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종 자신이 구약의 제사장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굉장히 큰 오해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아니고요. 따라서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목회자도 구약의 제사장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개신교 목회자는 제사장이나 레위 지파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면 헌신한 사람들을 위한 십일조는 누가 헌신한 사람들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의 공적(공공) 영역이죠.

여기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의 의미로 볼 때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고 그들을 위해 십일조를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정의, 자비, 신의,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을 공공영역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분들

이 분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사용합니다. 이것을 헌신을 향한 십일조.

2. 축제를 향한 십일조

성경에서 십일조를 왜 하는지, 언제 하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지, 여러 본문 있는데요.

신명기 14:22,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신명기 14:23, 당신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처음 난소와 양의 새끼와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으로(회막, 성전)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오늘날 교회 하고는 전혀 다른 곳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가서 어떻게 하냐면 주님 앞에서 먹으라는 거예요.

신명기 14:23, …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경외, 공경) 배우게 됩니다.

십일조가 뭐 하는 것인가? 그 하나님께서 배풀어주신 재산의 10분의 1을 가지고 가서 주님 앞에서 먹는 거예요.

그리고 왜 먹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히브리오 야레라고 하는 것의 번역이 두려워 한다 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공경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주님 앞에서 십일조를 바치고 그것을 먹으라는 거예요.

신명기 14:24, 그러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이, 당신들이 있는 곳에서 너무 멀고, 가기가 어려워서,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신명기 14:25, 당신들은 그것을 돈으로 바꿔서 그 돈을 가지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서

신명기 14:26,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맥주)이든지…

신명기 14:26,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 하십시오.

먼 곳에 살면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기에 너무 멀어요. 그래서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을 갖고 가다가 상할 수 있어요. 소나 양의 새끼를 가지고 가다가 뭔가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러면 그것에 해당한 것을 돈으로 바꿔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으면 거기까지 가서 그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사요.

그리고 어떻게 하냐면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즐겁게 먹으라고 그렇게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십일조랑 완전히 다르죠.

신명기 14:27, 그러나 성 안에서 당신들과 함께 사는 레위 사람은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것을 축제를 향한 십일조 축제를 위한 십일조라고 불러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십일조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우는 십일조예요.

어떻게? 그분을 인정하고 나와 내 가족이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돌봐주신 덕분에 이렇게 잘 삽니다. 기쁘게 삽니다. 하고…

하나님의 배풀어 주신 음식들을 앞에 두고 즐겁고 행복하게 먹는 거예요. 그게 십일조 정신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이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드러나심 이것을 기념하고 축복하면서 우리 가족이 우리 교회 구성원들이 함께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좋은 것으로 먹는 것 이것이 십일조의 중요한 정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신명기 14:27, 그러나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그리고 이렇게 기쁜 자리가 가능하게 해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 레위 사람들을 잊지 말고 있어라.

그것은 자신들이 지금 즐기고 있는 십일조의 몫 일부를 그분들을 위해 사용하라는 거죠. 전부 다 먹는 게 아닙니다.

그 몫의 일부를 레위인들을 위해 따로 비축하거나 따로 떼어두는 거죠. 이것을 축제를 향한 십일조 축제를 위한 십일조라고 불러보겠습니다.

십일조 정신 너무 좋잖아요. 하나님 공경하는 걸 배우는 거예요.

공경하는 걸 어떻게? 두려워 떨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배풀어주신 선물을 먹고 마시는 기쁨과 행복, 웃음 속에서 하나님 공경하는 걸 배우는 게 축제의 십일조 정신이거든요. 행복한 거죠.

그 축제 속에서 이 축제를 가능하게 해줬던 레위 사람들을 위해서 그 몫을 떼어주는 잔치. 그러니까 참 배려 깊은, 사려 깊은 잔치…

그냥 먹고 마시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을 배우는 먹고 마심이에요.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 레위 사람들을 기억하는 축제의 자리예요.

오늘날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 속에 하고 이것이 가능하게 해줬던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예우하는 기쁨의 자리라면 그것은 축제를 향한 십일조 정신이 구현된 곳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3. 돌봄을 향한 십일조 혹은 돌봄을 위한 십일조라

신명기 14:28~29절에 있는 3년마다 걷는 십일조에 관한 겁니다.

신명기 14:28, 당신들은 매 삼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해 두었다가 당신들이 사는 성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외국인, 난민)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경제적인 난민이든 정치적인 난민이든 난민은 남의 땅에 가서 살게 된 사람입니다.

남의 땅에 가서 살게 됐다는 건 권리가 없다는 것이에요. 옆에 있는 이웃들과 분쟁이 났을 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십일조 정신은 무엇인가? 이렇게 권리가 박탈당한 사람들,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이사람들이 바로십일조를 통해서 돌봄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라는겁니다.

고아나 과부들(경제적 약자) 이사람들을 성안에서 배불리 먹게 하는 것 기뻐하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돌봄을 향한 십일조라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핵심에 속하는 일이고 십일조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실수

하나님께서 말라기, 아모스에서 이 십일조에 대해서 사람들이 저지리고 있는 잘못 두 가지를 각각 지적하시는데요.

아모스에서는 이 십일조의 근본정신을 잊어버린 채 십일조 하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십일조를 통해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 이겠죠. 어떤 이득이냐?

  • 나는 이렇게 십일조를 많이 한다고 자기의 위신을 높이는 사람들.
  • 또 하나는 그 십일조를 자기의 몫으로 돌릴 수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십일조를 사흘마다 한다라고 이렇게 아주 자랑하고 떠들지만 아모스 4장 1절부터 5절,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발하시고 꾸짖으십니다.

너희는 베델로 몰려가서 죄를 지어라.
길갈로 들어가서 더욱더 죄를 지어라.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고
사흘마다 십일조를 바쳐보아라.

아모스 4:4

이게 다 죄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정신에 어긋난 십일조, 이렇게 바치는 것은 죄라는 거예요.

아모스 4:5, …이스레엘 자손아, 바로 이런 것들이 너희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냐? 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아모스 4:6, 내가 너희가 사는 모든 성읍에서 끼닛거리를 남기지 않고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먹거리가 떨어지게 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렇게 질책하시죠. 말라기 선지자 입을 통해서 십일조의 정신도 십일조도 하지 않는 그 세태를 비판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치면 되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것을 훔치고서도
‘우리가주님의무엇을훔쳤습니까?’
하고 되묻는구나.
십일조와 헌물이 바로 그것이 아니냐

말라기 3:8

예수님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바로 이 아모스와 말라기 예언자들의 두 비판 정신을 잇습니다.

율벅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양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마태복음 23:23

이것은 십일조 대상이 아니죠. 곡식과 기름과 포도주가 십일조 대상이에요.

그런데 이런 채소류, 향신료류는 십일조를 굳이 바칠 필요가 없는데 그것들을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에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라고 비판하십니다.

십일조는 하지만 십일조의 정신을 버린 거죠. 그러면 십일조가 다 무력화 되는 겁니다.

정의란 무엇? 그것은 사람들간의 올바른 관계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는 것. 각 사람에게 올바른 몫을 주는 거예요.

자비는?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처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어머니가 갓난 아기의 상태를 살펴서 요청하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기저귀도 보고 배고프지 않는지 보고 어디 짓무르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살펴보는 그 마음이 자비거든요.

신의 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한 태도를 갖는 겁니다.

이런 것을 버리면서,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서 십일조만 한다? 그것은 십일조 정신의 반대되는 일을 하면서 십일조라고 하는 자기의 의만 세우는 일이 되겠죠. 예수께서 그것을 비판하십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마태복음과 유사한 말을 하시는데요.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정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소홀히 한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행해야 하지만
이런 것들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야 하였다.

누가복음 11:42

예수께서는 십일조 정신과 십일조를 행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또한 정의, 자비, 신의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를 통해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겠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여러 가지 중 하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우리도 사랑하는 거죠.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시고 어떤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십니까? 그분을 향해서 울부짖는 사람 그분 앞에서 신음하는 사람을 사랑하시죠?

그래서 우리가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십일조 정신이다.


김학철 목사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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